양귀비(楊貴妃)와 장한가(長恨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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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작성일25-07-15 10:25 조회329회 댓글0건본문
양귀비(楊貴妃)와 장한가(長恨歌)
양귀비(楊貴妃)와 당(唐)현종(玄宗)장한가(長恨歌)는
당(唐)나라 6대 왕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 한 120행 840자로 된 장시(長詩)이며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읊은 백거이(白居易)의 대표적 서사시(敍事詩)이기도 하다
황제가 양귀비(楊貴妃)의 교태에 넋이 나가 나랏일을 팽개치고 주독에 빠졌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크고 작은 반란(叛亂)이 일어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안록산(安祿山)의 난(亂)"
(절도사로 있던 안녹산(安祿山)과 그의 부하 사사명(史思明)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난 이라고 하여 "안사의 난" 이라고도 한다.)으로현종은 궁궐로 쳐들어 오는 반란군을 피해 촉나라로 피난을 가던 중안록산 일파에 겁을 먹은 황제의 근위병들이 양국충(楊國忠: 양귀비의 4촌오라버니, 일설에는 6촌 오라버니라는 설도 있으나 틀린 말이다)을 죽이고 이어 양귀비 마저 처단할 것을 황제에게 강력히 요구하자,현종은 어쩔 수 없이 눈물로 이를 허락하고 만다.
양귀비의 4촌오라버니 양국충(楊國忠)은 양귀비가 현종(玄宗)의 엄청난 총애를 받음에 따라 그의 후광으로 감찰어사(監察御史)및 시어사(侍御史)라는 직책으로 황제를 가까이서 보필하는 고위 관직을 얻었으며 "國忠"이라는 이름은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이름이다.
이와 더불어 15개의 주요 관직및 직책을 겸직해 그 권세가 나라 안팎을 뒤흔들었다고 문헌은 적고 있다.
아무튼 사랑하는 양귀비가 눈앞에서 근위병들에게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현종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낸다.
이때 현종의 나이는 71세 였고 양귀비는 38세 였다.
원래 양귀비(楊貴妃)는 현종의 열여덟 번째 아들 수(壽)의 비(妃)였다.
그녀는 수와 5년 동안 아무 탈 없이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며 살았다.
그런데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가 병으로 죽자.
맘에 드는 美女를 찾다가 그만 아들의 비(妃)인 양귀비가 목욕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선 아름다운 자태에 첫눈에 반해버렸으니... 이런 염병할~~
결국은 며느리를 빼앗아 자신의 비(妃)로 만들었고 곧바로 그녀의 두 자매까지도 비(妃)로 맞아들였다.이때 현종의 나이는 60세 였다.
이리하여 10여 년 동안 꿈같은 몽롱한 시절을 보낸다.
한편 이무렵 양귀비는 현종을 설득해 돌궐족 출신의 젊은 장수 안록산(安祿山)을 양자로 맞아들여 아들로 삼았으나 실재로는 양귀비와 은밀한 연인사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어쨋거나 양귀비의 든든한 후광을 등에 업은 안록산은 곧바로 절도사에 임명되었고 천하에 두려울게 없는 권세와 호사를 누렸으며 20만의 병력을 이끄는 병권까지 거머쥐게 된다.
황제의 정치가 이 모양이니
나라 꼬라지가 어찌 되갔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 아닌겠는가~
여기 저기서 크고 작은 반란이 일어나고 뜻 있는 선비들의 상소문이 빗발치자,그러잖아도 시기와 질투로 항상 눈에 가시로 여겼던 안록산은 양국충(楊國忠)을 제거 할 절호의 호기로 보고,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 잡는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을 총애하던 양귀비와 현종을 배반하고 그의 측근인 사사명과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이른바 "안록산의 난"이다.
안록산이 이끄는 반란군이 파죽지세로 황궁을 점령하며 밀려오자 현종은 양귀비의 고향인 산중 오지 사천땅(옛 촉나라)으로 황급히 피난을 떠난다.
<양귀비>
양귀비는 사천성(四川城) 출신으로 본명(本名)은 양옥환(楊玉環)이다.
귀비(貴妃)란 황제의 삼천명에 달했다는 많은 비(妃)중에 한명인,개개인을 지칭하는 왕비명(王妃名)이며 양옥환의 비명(妃名)이 양귀비(楊貴妃)인 것이다.
그녀는 고관대작의 딸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며 어린시절부터 총명하고 가무에도 능하며 애교와 교태가 타고났고,살결이 백옥같이 흰 절세미인이었다고도 전한다. 그런데 옥에 티라고 할까? 아니면 또 다른 매력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겨드랑이에서 야릇한 냄새가 풍겼다고 한다. 그래서 현종이 더더욱 환장을 했는지는 몰라도 다른 여러 왕비들 보다 유달리 목욕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튼 양귀비는 요즘으로 치자면 부잣집 맏며느리감으로 여겨지던
볼륨께나 있는 약간 뚱뚱하고 풍만한 글래머형의 체형으로
당시의 미인기준으로 볼 때 따를자가 없었던 모양이다.
여러 글에서도 양귀비를 資質豊艶(풍만하고 요염하다)라고 표현한 걸 보면그녀의 자태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양귀비에 관해선 후대로 내려오며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데
아마도 사실보다 과장 된 부분이 많지않나 싶다.
위인(爲人)이든 미인(美人)이든 시대를 잘 타고나야 출세를 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연꽃 휘장 속에서 보낸 뜨거운 밤, 봄밤이 너무나 짧아 해가 높이 솟았구나"라는 싯구에서 보여지듯 두 사람이 얼마나 질펀하게 사랑놀이에 정신이 팔려 놀았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으며.
현종은 양귀비가 죽고나서도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눈물로 그리워하며 6년을 더 살다가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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