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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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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작성일24-09-13 10:44 조회3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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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유쾌한 오해.

          

전동차 속에서였다. 

아직도 한낮엔 무더위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3호선 전동차 안은 쾌적할 만큼 서늘했고 승객도 과히 붐비지가 않았다.기술의 발달 때문인지, 경제성장 때문인지는 몰라도 1호선보다는 2호선이 더 쾌적하고 2호선 보다는 3,4호선이 더 쾌적한 걸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늘 2호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약간은 샘도 났다.


내 옆자리가 비자 그 앞에 서있던 청년을 밀치고 뚱뚱한 중년 남자가 잽싸게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넉넉하던 자리가 꽉 차면서 내 치맛자락이 그 밑에 깔렸다. 

약간 멋을 부리고 나간 날이라 나도 눈살을 찌푸리면서 치맛자락을 끌어 내려고 했지만 그는 꼼짝도 안 했다. 

여간 무신경한 남자가 아니었다.

나는 별 수 없어 그 남자를 툭툭 치면서 내 치맛자락이 그의 엉덩이 밑에 깔린 걸 알려주었다. 

그제야 몸을 조금 들썩했을 뿐 미안하단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워낙 몸이 뚱뚱해서 그랬겠지만 반소매 밑으로 드러난 끈끈한 팔로 양쪽 사람을 밀치는 듯한 그의 자세 때문에 여간 거북하고 불쾌하지가 않았다. 


일어나버릴까도 싶었지만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고, 승객은 자꾸만 불어나고 있었다.


그가 큰 소리로 하품을 했다. 

하품을 하려면 그냥 할 것이지, 호랑이가 우짖는 것처럼 ‘어흥!’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가락까지 붙이니까 졸던 사람까지 깜짝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이야 그러건 말건 그는 자기집 안방에서 처럼 거침도 없고 눈치도 없었다.


나는 그런 남자 옆에 앉아 있다는 불쾌감을 잊으려고  방금 탄 젊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부가 맑을 뿐 순수한 여자였는데, 아주 화려한 모자를 들고 있었다.

차양이 달린 하늘색 모자였는데, 차양 위에는 다시 금줄이 든 순백의 프릴이 달렸고 망사 베일까지 늘어진, 좀처럼 시중에서는 보기 힘든 환상적인 모자였다.


그 여자가 쓰기엔 너무 작았고 인형의 모자치고는 너무 크고 정교했다. 그 모자를 들고 있음으로써 그 여자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모자가 아니라 액세서리인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내 옆에 앉았던 그 무신경한 남자가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모자를 든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 

그 여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은 모양 이었다.

그 남자도 그 여자가 보기 좋았던 듯했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여자에게 아부를 하다니. 


오십도 넘어 보이는 남자가 20대의 젋은 여자에게 자리를 내주는 모습은 암만해도 부자연스러 워 보였고 흑심까지 있어 보이는데도 남자는 그 방면에도 여전히 무신경했다.

마땅히 사양할 줄 알았는데 여자는 고개만 까딱하고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나는 그 여자가 만삭의 몸임을 알았다. 

나는 화려한 모자에만 정신이 팔려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라 그 여자에겐 세 살쯤 되어 보이는 깜찍한 딸도 딸려 있었다.

자리에 앉은 여자는 딸을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다. 

그 여자는 딸에게 그 모자를 씌우지 않고 여전히 들고만 있었지만, 그 환상적인 모자를 쓴 여아를 상상하는 건 뱃속이 간지럽도록 즐거운 일이었다.


더 즐거운 건 내가 여지껏 그 뚱뚱한 남자를 공연히 미워하고 오해한 게 풀려서였다. 

그 남자가 뻔뻔하고 무신경하다는 건 순전히 나의 오해였다.


다시 한번 쳐다본 그 남자는 듬직하고도 근사해 보였고 매우 만족스러운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한 몸이 자리를 내줌으로써 세 식구를 앉힐 수가 있었으니 흐뭇할 수 밖에.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겉보다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자가 멋있는 사람 아닐까? 아니 ~

난 겉과 내면이 함께 아름다운 진짜 멋있는 사람으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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